5일 <하녀>를 봤다. 주변의 지인들이 극찬을 하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이라는 <하녀>를 '드디어' 봤다. 우연찮은 기회가 생겨서 봤는데 뭐랄까 짧게 말하면 재미있었다. ^^;;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김기영'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모호한 의문점이 생겼다. 이 의문은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지인들을 만나면 직접 물어보고, 이 포스트에서는 영화를 보고 든 대략적인 단상들을 정리해 보련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 있음.
1. 환상영화라는 표현이 있다면 이 영화가 그렇다고 느껴졌다. 정확히 SF영화는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포는 있는데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공익광고협의회가 제작한 영화 같지만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아주 특이한 영화였다. 아마 이런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2. 영화 속의 등장인물과 소품들은 전혀 '리얼'하지 않다. 노래를 배우는 여공들의 상황과 모습, 노래를 가르키지 못 하면 생계를 위협받는 선생의 집에 있는 피아노와 담배갑도 낯선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 보다는 오히려 대사들이 전혀 '리얼'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드 드라마(보다 무겁지만 그것 이상)의 대사처럼 톡톡 튀는 맛이 이 영화가 1960년에 찍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게 한다. '리얼'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이런 '리얼'하지 않음이 나올 수 있었던 동력이 궁금할 뿐이다.
3. 이층집은 60년만이 아니라 80년대에도 하나의 로망이었다. 80년에 들어서면서 고층 아파트가 그 로망을 대신하게 되지만, 높이 솟은 집은 서구화와 근대화의 상징물이다. 옆으로 누운 동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높이는 권위와 성공을 보여주는 척도인 것이다. <하녀>에서 눈에 띄인 것은 1층과 2층의 분리와 계단의 의미였다. 1층은 현실의 공간이다. 집을 짓기 전에 1층만이 존재할 때는 피아노와 재봉틀은 1층(현실)에 공존하여 존재한다. 하지만 이층집이 된 후에는 1층에는 재봉틀만이 있고, 2층은 피아노가 있는 성공(행복)의 공간으로 혹은 욕망(타락)의 공간으로 분리된다. 계단은 1층과 2층의 단순한 연결이기도 하지만 추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든 죽음은 계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더구나 2층에서 자살한 후에 왜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아마 타락의 주어는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성공과 행복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을 오가는 상승과 추락의 모습이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여튼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의문점은 왜 2층에서 시작해서 결국 2층으로 돌아와서 끝맺었는가 하는 점이다. '김기영'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인 근대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근대지향적인 것은 아닐었을까?
4. 영화 상영 이후 이 영화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해석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분석틀은 정신분석학과 탈식민주의 중에 호미 바바의 견해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내 전공도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과 평은 하지 않겠다. 단지 장황해서 좋은 글은 없다. 중요한 것은 개념의 상찬이 아니라 뚜렷한 문제의식이다.
p.s. 이후에 기회가 된다면 김기영의 영화를 더 봐야겠다. 다른 무엇보다도 약간은 과장된 표현의 영화가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