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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 and Engels
thinking |
2004/12/2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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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예전에는 Marx가 Engels를 만난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다. Marx 가족이 정말 빈궁하게 살았지만 그마저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Engels의 덕이었다. Engels의 아버지가 부유한 산업 부르주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Marx가 좀 더 부유하게 살았다면 '자본'의 집필이 좀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여튼 Engels는 일반적으로 Marx의 경제적 후원자이면서 보조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소위 Marxism의 '위기'는 사상의 근원인 Marx를 살리기 위해서 처음에는 Stalin을 죽이고, 다음에는 Lenin을 죽이고 그것으로 부족하자 Engels를 죽였다. 물론 이도 부족했는지 일부에서는 Marx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소위 진짜 Marx의 사상을 탐구하기도 하였다.
요새는 이런 논의를 모두 떠나서 Marx가 Engels를 만나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Marx가 라인신문 편집장이었을 때 둘은 처음 만났는데, 이 때 둘은 서로를 싫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청년헤겔학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독불연보'를 발간하던 시절에 다시 만난 둘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최초의 공동저작인 '신성비판'을 통해 '청년헤겔학파'를 비판하면서, 그들의 공동작업을 시작한다.
특정한 영역에 대한 공부를 제도권 내에서 하게 되면서, 가장 강력한 아쉬움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세미나는 그저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편하고 광범위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곤욕스러운 경험이다. 계속 정체될 뿐만 아니라 '둔탁함'이라는 끈적끈적한 늪으로 당겨지는 것 같아서 두렵다.
Marx는 자신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상적 실천적 동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며, 먼저 죽게 된 것에도 감사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주변에도 전혀 그런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과의 경험이 학교에서 혹은 특정한 영역에서의 불만족을 극대화하고 있다. 서로가 택한 전공(혹은 방식)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각개약진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덧글> 특정한 사람 이름을 영어로 쓴 것은 그 단어로 이 포스트가 검색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글> 연말과 연초에 있을 두 개의 송년회 모임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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