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직도 '상승하는 계급'이며, 여전히 저돌적인 감투정신과 권력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집요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어서, 그런 자의식은 자기만족과 독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양심이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부분적으로 자기기만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후에 사회주의의 폭로로 자기확신이 깨지게 될 상태로까지 고조된다. 그들은 점점 더 비관용적이고 자유와 반대되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가장 나쁜 결점들과 편협성 및 천박한 합리주의, 그리고 이상주의의 가면을 쓴 이윤추구를 바탕으로 한 자기들의 세계관을 이룩한다. 모든 진정한 이상주의는 그들에게는 의심스러운 것이고, 무릇 비(非)세속성이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그들은 모든 비타협주의와 급진주의에 대해서 투쟁하며, 사회의 모순을 약삭빠르게 얼버무리는 그들의 소위 '중용'정신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박해,억압한다.(p.22)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권의 한 부분으로, 대략 1830년 경의 부르주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곧바로 소위 386 정치인들을 떠올렸다. 자유주의연대라는 이상한 단체를 만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재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 있는 그들(386의 정치 이미지는 강한 남성성에 기반해 있다)이 하우저의 설명과 교차된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과도한 자기소명의식에 꽉차서 움직이는 그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부르주아지로 탄생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예상을 해본다. 그들은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들은 연대를 모른다. 오직 권력의 힘과 계몽의 필요성만을 확신한다. 이런 점에서 80년대가 90년대를 배태했지만, 동시에 90년대의 굴레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