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닉네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zorba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희랍)人 조르바]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 때문에 방송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야기와 함께 zorba도 얼핏 설명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소설보다는 앤서니 퀸이 출연한 영화와 영화 속 배경음악이었던 zorba'dance라는 음악이 주로 소개되었다. 그거야 영상매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zorba라는 말이 나오면 왠지 "어이, 내 아이디가 zroba야!!"라고 아는 척을 하고 싶기도 했다. ^^;
내가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3 혹은 고1 쯤이 아닐까 한다. 책을 참 좋아해서 닥치는대로 책을 읽을 때였다.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이 마음 든든하게 느껴지던 약간은 냉소적이면서 지적 허영을 꿈 꾸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모두 다 아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나만 혹은 몇 명만이 읽고 말할 수 있는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던 (머리와 마음 속만)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남들이 삼국지에 만족할 때, 난 초한지와 열국지를 읽고, 고사성어 맞추기도 하면서 (성적우월이 아니라) 지적우월을 느끼려고 노력(?)했던 시기였다.
more.. 주변에 책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책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던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은 라디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91.9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탈렌트 이창훈이 책 소개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 책을 소개해줬다. 그 소개가 내 마음에 들어서 다음날 바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책도 두툼하고 표지도 짙은 갈색에 사람 얼굴이 있는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생긴 책이었기에 무척 흡족해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책을 꼼꼼히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이 약간 시적이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당시에는 정말 지루하게 읽었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함이 심해졌지만, 책을 샀는데 굴복할 수 없다는 생각과 아는 척 할려면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바득바득 다 읽었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나는 하나의 화두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
zorba는 자유인이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도덕, 윤리, 쾌락...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기억에 의존해서 말하면) 사람들의 발목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말뚝에 묶여 있다고 할 때, 그 끈이 길이가 짧다면 사람들은 당장에 불편함을 느끼며 이것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끈이 생활을 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길다고 하면 과연 사람들은 그것을 벗어나려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절대적 자유에 대한 질문.
어린 마음에 이것은 자유에 대한 開眼이었다. 공격적이고 치기어린 문체로 학교 교육을 비판하면서 자유라는 주제에 대해 학교교지(당시 편집장과 막역한 사이였음)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도 zorba의 영향이었다. 그 때 교지가 지금 없어서 정확히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거리지만, 선생들이 출석부와 성적표로 우리를 가두고 있다고 쓴 듯 하다. 뻔한 이야기를 입에 침 튀기며 열심히 말했던 듯 하다.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은 재수를 하면서 더 깊어(?) 졌고, 대학에 가서도 좋은 무기가 되었다. 새내기 때 선배들의 솔직히 좀 어설픈 이야기와 선배 티내려는 모습들에 흥미가 없었지만(그래서 내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걔중에 자유를 대해 말하는 선배들이 나에게는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말뚝을 벗어나버리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후에 내가 선배가 되어서 그래도 어설프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 때 zorba의 예시를 가끔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말하는 나만 스스로 감동했던 것 같지만. OTL
zorba는 나에게 갈 수 없어서 언제나 가고 싶은 삶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한없이 좋았던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봤던 적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못 해봤다. 이도저도 아니지만 그리고 뭔가 불안하지만 이 상태라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바닥에 혹은 극단까지 몰고 가는 것을 막곤했다. 지식인들이 혹은 이 시대 대학생들이 가졌던 바로 그 두려움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절대적 경계를 걸어다녔던 zorba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내가 zorba를 욕망하는 이유일 것이다.
蛇足 - 쓰다 보니 긴 글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군. ㅋㅋ 그리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 닉네임에 대한 글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자축버전으로 썼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