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지난 17일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다녀왔다. 몇 명 없는 술친구 중에 하나이기도 한 모씨의 선고공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선고공판이라서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배웅을 갔었다. 한데 예상과 다른 판결이 나왔다. 황당함이라는 표현을 빼면 설명할 길이 없는 판결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판사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피고의 항소를 유도해서 '번복의 시간'을 더 주려고 이전의 판결들보다 더 중한 선고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판결문을 읽는 판사가 전해주려던 느낌은 여튼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거만한 꼰대의 '자상함'에 불과했다. 판사는 기본적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진행했을 고민과 결단의 무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판사는 "인생의 어떤 순간에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흐른 후에 후회스런 결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피고의 고민을 어린 아이의 치기로 바라봤다. 더구나 "지금의 결정이 주변에서 영웅시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후회할 것"이라며, 피고의 결단을 분위기에 편승한 비주체적 행위로 매도했다. 이런 판사의 거만한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재판은 언제나 너무 일방적이다. 판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도 없고, 판사가 정지시키면 말을 하다가도 멈춰야 한다. 더구나 판결의 이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아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법정에 여론이 존재할 자리는 없다. 오직 판사의 입을 빌려서 나오는 '사회의 상식'만이 존재할 뿐이다. 법정에서 '법의 이름'은 절대적이다. 법정에서 현행법은 절대적이며, 이런 절대적 속성은 판사들의 거만함을 전제한다. 그 거만함이 좋게 사용되던 나쁜게 사용되던 간에 말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법'은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하다. 그래도 기억해야 할 것은 법은 언제나 '사회적 화석'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자상함으로 표출된 거만한 확신이 나를 짜증나게 한 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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