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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식
thinking | 2006/02/21 14:08
일본 여행을 가기 전에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박지향 엮음/책세상, 이하 재인식)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잘 팔릴 것이라는 것도 예상했었다. 돌아와서 보니 정말 잘 팔리고 있다. 책세상은 역시 책을 팔아먹는 기획에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난 아직 이책을 읽지 않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마 이후에도 굳이 이 책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 실린 논문들 중에 새로 쓴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획의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기획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씀/한길사, 이하 해전사)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깔면서 '재인식'의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해전사'에 대한 비판은 사료적 측면에서 틀린 것이 있고, 민중혁명의 필연성에 대해서 일면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판이 실재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허상 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료에 관한 것이다. '해전사'는 7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고, '재인식'은 2006년에 출간한 책이다. 대략 25년 정도의 격차가 있다. 이 25년 동안 해방전후시기와 관련하여 새롭게 발굴되고 공개된 사료는 엄청난 양이다. 냉전의 붕괴는 소련의 문서를 열람할 수 있게 했고, 세월의 흐름은 미국의 자료가 정보공개 대상이 되게 하였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당시와 비교할때,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다. 필화로 잡혀가는 일도 거의 없고, 논리상 이용할 수 없는 자료도 없다. 하물며 북한자료도 열람가능한 상황이다. 당연하게도 25년의 세월은 당시의 史實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하였다. 25년전의 책을 가지고 새로운 내용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세월이 준 혜택을 망각한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더구나 당시 '해전사'가 가진 역사성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내리는 것은 '역사적 태도'가 아니다. 당시 해전사는 한반도의 절반만을 대상으로 하던 역사인식의 틀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게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책이다. 그 책은 당연하게도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 판단을 제거한 채로 현재적 기준에서 과거의 책에 대한 선정적 비판은 그저 상술로 읽힐 뿐이다. 비교사가 가능한 것은 그만한 사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현실과 함께 그만큼 일국사의 영역에서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틀리고 무엇이 옳은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역사인식에 대한 '재인식'의 비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해전사'의 인식이 지금 역사에 대한 인식의 주류인가?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가? 대중場에서인가 아니면 학문場에서인가? 이런 분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해전사'에 대한 비판은 실체 없는 비판에 불과한 것이다. 20여년간의 학문적 성과를 새롭게 반영했다고 선전하는 '재인식'이 실제로는 20여년간 축적된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적 욕구가 학문적 성과를 넘쳐서 표현된 것 같다. 혹은 이 책이 어떻게 이용되도 상관없을 만큼 '탈정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책이 새로운 역사인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되어 있는 글은 없는 것 같다. (설마 이영훈 교수의 '문명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결국 이 책이 주는 실제적 의미는 정치적 효과를 제외하면 없는것 같다. 허상놀음!!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의미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수록된 개별 논문들은 그 자체로 평가 받아야 할 글들이다. 어차피 공동작업의 결과로 묶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쁜 포장지에 쌓인 모래알 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새로운 역사상을 고민하는 문제는 진행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비판하는 것은 그렇게 새롭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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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달고양이 2006/02/21 17:05 L R X
해전사, 재인식 등의 약어를 알아볼 사람들은 역사학 전공자나 관심있는 사람들 뿐일 듯해요. 웬만하면 한 번 정도는 풀어써주시지.
zorba 2006/02/21 18:40 L X
옳은 지적이야. 수정했음. ^^
은하 2006/03/01 20:35 L R X
한편으로 여성사나 이런 쪽을 보면...나름 소장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도 있는데 너무 박지향, 이영훈의 이름에 가려버린듯한..느낌도 받네요. 정말 개별논문들은 개별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듯 해요;;
zorba 2006/03/03 21:21 L X
그렇긴 하지만, 여기 글을 낸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도 굳이 의미없는 일이 아닐끼 하는 생각도 합니다. 동의지반이 있으니까 같이 책을 내는 것이겠죠. 그리고 저는 동의지반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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