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學家는 독선주의로 눈감고 가만히 앉아 있고 功令家는 벼슬살이에 바빠 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여 마음과 정신은 썩어빠진 禮說에 다 탕진하며, 수염과 머리털은 허황한 詩文에 희어져서 그밖에 또 시국이 대변하고 풍조가 진탕하되 儒家 문중에서는 한꿈이 예와 같으니, 아, 이 나라에 예로부터 상류 인물로 지칭하던 儒林의 사상이 이에 이르러 끝나매 이 나라의 슬픈 운명도 더 깊어졌도다. (중략) 전에 명나라의 名儒 顧憲成 씨가 말하기를 '오늘날의 선비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도 도무지 모른 체하고 다만 講學만 한다'고 슬피 탄식하더니, 현재 한국 선비가 불행히 이 병에 걸린 자가 많도다."
- '警告 儒林同胞'(대한매일신보 1908.1. 16.)
신채호는 당시 영향력 있었던 사상으로 사회진화론과 계몽주의를 받아들인다.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英雄과 世界'(1908.1.4~5.)라는 논설에서 각 분야의 세계적 영웅을 언급하면서 학술과 관련해서는 칸트와 스펜서를 영웅으로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신채호가 우승열패의 국제질서 속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먼저 정신상 국가가 있은 뒤에야 형식상 국가가 비로소 있으니, 철혈정략가의 정신상 국가가 있은 뒤에 독일의 형식상 국가가 있으며, 13州 의회의 정신상 국가가 있은 뒤에 미합중국의 형식상 국가가 있으며, 소년 이태리의 정신상 국가가 있은 뒤에 이태리의 형식상 국가가 있었으며, 기타 어느 나라든지 다 그러하니, 아아, 정신상 국가는 곧 형식상 국가의 어머니이다. (중략) 그 독립, 자유 등 정신만 있으면 강토, 주권 등 형식이 없을지라도 그 눈속에 마음속에 국가가 완전히 있으며, 그 머리속에 뱃속에 국가가 웅비하여 그 국민 한몸에는 그 나라의 독립, 자유 등의 실력과 광채가 있어서 마침내 그 국가를 건립할 날이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은 나라는 오늘 세우지 못하면 내일 세우며, 내일 세우지 못하면 또 다음날 세워서 반드시 세우고야 마는 것이다."
- '精神上 國家'(대한매일신보 1909. 4. 29.)
이 글에서 신채호는 국가에 대한 관념이 국가의 실재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다른 나라(서양)의 역사를 통하여 근대국민국가 형성에 대한 통찰에 도달헀다고 보여진다. 즉, 국민이라는 관념의 형성이 없다면 국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고,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던 국민국가의 기획을 조선에서 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없기 때문에 정신상 국가를 강조했다고 보는 것은 미흡한 해석인 것 같다.
신채호의 이러한 국민국가의 기획은 1908년 중에 대한매일신보에 두 번에 걸쳐서 연재한 [독사신론]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역사가 없는 민족'을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대로부터의 역사를 '선택'한다.
"오늘날에 있어서 민족주의로써 전국민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며, 국가관념으로써 청년들의 머리를 도야하여 우세한 자는 살아남고 열등한 자는 멸망한다는 기로에 처하여 한가닥 아직 남아 있는 나라의 명백을 지키고자 하려면 역사를 버리고는 다른 방책이 없다고 할 것이나, 이런 역사를 역사라고 할진대 역사가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역사를 쓰는 자는 반드시 그 나라의 주인되는 한 종족을 먼저 드러내어, 이것으로 주제를 삼은 후에 그 정치는 어떻게 흥하고 쇠하였으며, 그 산업은 어떻게 번창하고 몰락하였으며, 그 무공은 어떻게 나아가고 물러났으며, 그 생활관습과 풍속은 어떻게 변하여 왔으며, 그 밖으로부터 들어온 각각의 종족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그 다른 지역의 나라들과 어떻게 교섭하였는가를 서술하여야 이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우리나라 인종을 대략 여섯 종류로 나누니, 첫째 선비족(鮮卑族), 둘째 부여족(扶餘族), 셋째 지나족(支那族), 넷째 말갈족(靺鞨族), 다섯째 여진족(女眞族), 여섯째 토족(土族)이다. (중략) 그 여섯 종족 가운데 모습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른 다섯 종족을 정복하고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역대 주인이 된 종족은 실로 부여족 한 종족에 지나지 않으니, 대개 4천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다."
신채호에게 있어서 이렇게 '선택'된 역사는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념을 체화하는 것은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채호는 '20세기 新國民'(대한매일신보 1910.2.22.~3.3.)이라는 논설에서 "한국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적자생존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으로 "국민 동포가 20세기 신국민이 되어"야 함을 누차 강조한다. 왜냐하면 "승패의 결과가 국민 전체에 있기" 때문에, 국가경쟁의 원동력인 국민들의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주구장창 언론과 기업에서 외쳐대는 실체 없는 국가경쟁력의 논리가 이 때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듯 하다.)
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910년 전후 시기에 나타나는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론과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기획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다시금 광범위하게 민족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민족주의 역사학의 논리가 20세기 내내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이성의 폭력을 방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진화론의 자장(磁場)에서 과연 자유로운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일정하게 민족주의가 저항적 의미를 가지며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의 성격을 띠기도 했지만, 현재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외적 원인에 의한 합리화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